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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 2008/10/04 02:03
제목 그대로, 타이틀이 뭐라고.
석민이는 평생 원하는 건 자신의 손으로 개척해야 하는 운명인 게죠.
아니, 물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타난 축복받은 인생이 아니고서야 삶은 노력해서 원하는 걸 얻어나가는 과정이지요.
그래도 살다 보면 어느 정도 거저 얻어지는 게 있지 않겠어요?
어떤 책을 너무나 갖고 싶어하니 친구가 '니가 보고 싶다니까'하는 말과 함께 선물로 안겨주거나 하는 일.
뭔가 손을 쓰지 않고서도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다가오는 것도 하나쯤은 있으면 세상을 살아나갈 재미도 생길 거 같은데.
석민이는 절대 그런 운명이 못되나봐요.
은수저는 커녕 오히려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해도 얻어지는 건 남들에 비해서 적을 때가 더 많았죠.
올 시즌 그렇게 잘했는데도 그저 '취향'이 아니라는 한 마디로 국가대표마저 못할 뻔 했으니 오죽했을 지.
취향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걸 제가 모르는 건 아닌데, 국가대표가 그저 취향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잖아?
경기 시작전엔 희미하게나마 웃던 석민이가 공격 때만 되면 앉아있지 못하고 서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경기 관전이 석민이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실책으로 점수가 조금 나자, 종범성과 일부 코치들을 필두로 모든 팀 동료들이 평균자책 계산하느라 떠들썩해지니 다시 희미하게 웃으려고 애를 쓰고.
그러다가 경기가 꼬이자 서 있을 기운조차 없는지 덕아웃 벽에 기대어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고.
야수들이 수비하다가 들어와서 앞줄에 앉아야 하니 힘없이 덕아웃 뒷줄로 옮겨가 퀭한 얼굴로 앉아있고.
심지어 자기가 등판했을 때 야수들이 뒤에서 실책을 연발하고 그게 에러로 기록 안 되어서 모조리 평균 자책으로 올라갔을 때에도 웃던 석민이라 그렇게 괴로워하는 걸 본 기억이 없어요.
차라리 덕아웃 뒤로 들어가서 드러누워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자기는 괜찮다는 듯 덕아웃에 기어코 앉아 있으나, 괜찮음을 가장하려는 얼굴이 절대 괜찮지가 않아.
뒤에서 서성이고 있을 땐 옆에 경태가 붙어 앉아서 농담같은 걸 해서 웃기려고 애쓰고.
이영수가 곁에 붙어 앉아서 위로해주고, 서재응이 농담으로 웃기려고 애쓰고, 종범성이 위로하고.....
심지어 강철오빠가 석민이 양 볼을 손으로 감싸주며 토닥토닥 해주고 지나가는데 약간이나마 웃음기를 띄는 것도 그저 그 때뿐.
석민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석민이가, 우리 에이스가 그렇게나 원하는데...
사실은 시즌 마지막 등판하는 게 부담감이 상당할 것이면서도 그렇게나 타이틀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어하는데.
은전 한 닢도 아니고 평균 자책 타이틀인데...
석민이 표정을 보셨다면 감독이 석민이를 무리시킨다는 이야기는 절대 못하실거라고 봐요.
도움이라고는 안 준 것이나 다름 없는 야수들까지 석민이가 괴로워하니 하나같이 위로하며 지나가거나 찔려서 말도 못 붙이고 있는(심지어 석민이 근처에선 고참들도 고뇌하고 있는), 그런 팀 분위기 보셨다면 그런 이야기 못해요.
석민이같이 어지간하면 참는 성격에 저렇게나 간절히 원하는데 해줘야죠. 당연히.
이런 석민이는 너무나 마음 아픕니다. 안 아플 수가 없는 손가락이에요.
맨 앞줄에 앉아서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어요. 일부러 농담 꺼내고 우리 선수들 까면서 참았어요.
야구 얘기를 조금 하자면,
양선생은 이 경기에서 잘 던지거나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라고 봤어요.
양현종은 김광현을 아주 의식하거든요.
사회는 2인자를 절대 기억해주지 않죠.
청대 시절 앞에 나와서 버티면서 궂은 일 다 했지만 승리는 뒤에 나온 김광현이 챙겼고, 김광현은 몇 승이나 챙긴 특급 에이스로 떠들썩하게 알려졌지만 양현종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때에도 양현종은 김광현을 의식했어요.
하다못해 자기가 전국대회에서 탈삼진을 엄청나게 솎아내고 기사화될 걸 기대했는데 다음날 광현이가 삼진을 하나 더 잡아서 자기가 묻혔던 것까지 속상해하던 녀석이에요.
가진 깜냥이 딸린다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고, 실제로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 상태지만 그래도 양선생은 김광현 상대로만큼은 잘하고 싶어할 거예요. 그 정도의 자존심도 없이 지금 위치나마 올 수는 없죠.
우울해하다가도 구김살이라곤 없는 성격에 금세 평정을 되찾은 듯 했지만 솔직히 속상했어요. 자기가 불지른 경우도 많았지만 호투한 것에 비해서 너무나 얻은 게 없는, 박복이라면 박복이 아닌가요.
오준형도 좋았죠.
대학 시절의 모습이 조금 돌아온 듯 했어요.
기가 막히게 타자들 무릎에 척척 걸치는 제구를 보면서... 저기서 구속만 한 4~5km/h 정도 늘고 공끝의 무브먼트가 좀더 살아난다면 드디어 대학 시절의 오준형이 돌아오는 거냐고 기대감이 들었을 정도로.
타석에서 스윙도 못한 채 서서 삼진당하고 돌아오던 타자 하나가 대기하던 타자들에게 '슬라이더'하고 소근거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게 기억 나네요.
힘 떨어져서 홈런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 예리하던 슬라이더의 오준형이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그 오준형이, 2군이 아닌 1군에 와서야 조금 살아나는 모습이 보였다는게...
작년엔 2군에 묻혀있게 만들었고 올해 2군에서 투수들을 지도했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물론 자기가 놀았던 것도 있긴 있지만요. 갖고있던 기본조차도 거의 사라지게 만든 데에는 지도자의 책임도 크죠.
잘한 투수들 때문에 좋으면서도 얻은 게 없으니 속상하고. 석민이는 마음 아프고.
너무나 괴로워하던 석민이 때문에 걱정도 들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TV로 보면서 우울한 것보다는 직접 보고 속상한 게 백 배는 낫겠지요.
내일도 갑니다.
*
같이 첨부한 노래는 유동훈의 테마송이에요.
저 표정 변화라곤 없이 무덤덤해보이는 아저씨가 이렇게 감성적인 부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사가 찡하게 와닿는다죠. (조만간 타이거즈 테마송 플레이어에 함께 업뎃할게요)
석민이도 힘을 냈으면....
bgm. Jennifer Lopez - Bra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