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상황들 - 2009/06/26 01:52
글이 조금 과잉된 기분으로 쓴 글이라 부연설명을 더 붙입니다.
제가 화난 포인트도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제 이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제가 그 와중에도 좋았고 고마웠던 부분에 대해서도 꼭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1)
먼저 대타 김광현.
김광현은 제가 보기에 고교 시절 투수로는 손목 꺾임(후킹?) 정도의 문제 외엔 당연히 대형 투수였습니다.
그런데 타자로서도 재능도 참 대단했지요. 당시 라이벌이던 정영일은 약간 거포로서의 재목이었다면, 얘는 좀더 정확도가 있는... 중장거리 히터였죠. 지인들끼리도 당연히 투수지만 타자로서 재능이 아깝다고 막 웃으면서 봤던, 정말 여러모로 정영일과 라이벌로 꼽힐만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슥흐가 야수 엔트리를 전원 소진한 가운데(제가 야수 엔트리를 다 세어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요) 투수 엔트리에서 가장 나이 어린 막내 선수였고, 가장 최근에 타격을 해봤을만한 투수였습니다.
고로 김광현이 타자로 나왔을 때는 '진짜 이 놈한테 안타만 맞지 말자' 하면서 애원하면서 봤습니다.
타격 안한지 최소 3년은 됐을 것인데 선구안 좋더군요.
아, 광현이 하는 것만 봐도 이 팀은 이기려는 의지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던 때였죠.
2)
김광현이 대타로 나올 것 같다는 걸 이미 짐작한 상황에서,
그럼 정대현 타석에서 대타를 썼으니까 다음 투수가 누가 나올까 고민하면서 불펜을 보니
어엇, 몸을 풀던 건 윤길현?
이승호는 우왕좌왕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코치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눈치.
그래. 어제 던지기는 했지만 어제 생각보다는 조금 던졌으니까 나올 수도 있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윤길현이 나오는데 이건 무재배다! ㅅㅂ 이건 뭐냐. 이 잉여 타순이 칠리가 없다. 난 왜 막장을 몰고다니냐 하고있는데
3)
공수교대되고 갑자기 글러브들이 부산하게 왔다갔다 합디다.
광현이가 막내라서 왔다갔다하며 그 글러브 다 배달하고 있기에 수비 위치가 왜 이렇게 바뀌어? 설마 광현이가 수비 들어가? 하고 있는데...
덕아웃에서 김강민이 나와서 불펜을 향해 뭔가 제가 모르는 야구계 은어로 한 마디 외쳤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눈치상 아마 글러브 바꾸자는 얘기였을 거예요.
몸 풀던 투수 윤길현이 갑자기 1루수로 들어가고 불펜에서 투수용 글러브가 최정에게 배달되는 겁니다.
앗, 이건 뭥미? 최정이 등판하네요.
이 순간 저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어있는데(윤길현 몸 푸는 걸 봤는데, 봤는데 하면서 눈 앞에 놓여진 환경을 이해 못하는 상황이 된 거죠) 지인은 판단력이 빠르셔서 최정 투수, 최정 하면서 말문을 못 이으시고... 그 와중에 윤길현이 1루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셔서 아찔해하시고 저는 위에 상황 정리를 해놓긴 했지만 사실 당시엔 그 상황이 한 몇 분간 파악이 안 되었고.
최정 연습투구 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당시까지도 최정이 나온건지 믿어지지 않더랍니다.
4)
그래도 최정 공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하긴 지명될 때부터 무슨 포지션으로 키울지 연구해야겠다 하는 얘기까지 듣던 선수였죠. 도대체 못하는 것이 없어서, 포수를 할까 3루를 할까 투수를 할까 그런 얘기 나왔죠? (투수는 약간 농담성이었는데, 포수/3루 얘긴 진짜였을 겁니다)
아마 1루쪽 선수들의 분위기가 부산하면서도 당시 아주 최악의 모멸감까진 아니었을 상황인 게 어쨌든 공이라도 좋았기 때문에.
투수 해본지 4년은 된 선수가 무슨 연습투구에 직구, 변화구를 다 테스트를 해봐.
최정 공이 너무 좋으니, 차라리 승부조작 이야기 따윈 생각도 안하게 되면서(그래서 이전 포스팅에 승부조작 운운 개소리 말라고 써놓은 것임) 느낀게 모멸감.
실제로 팬질하면서 이렇게 수치를 느끼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인은 진짜 말문을 못 이으시다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고개를 파묻으셨고, 그래도 전 그정도로 피눈물을 흘릴 것까진 아니었는데 머리 속에 아무 것도 안 떠오르는게요.
최정한테 발려서 무 재배 시나리오까지.... ㅋㅋㅋㅋㅋ
이 빙구시키들아, 각성해라. 니들은 그렇게 끝내면 프로도 아니다 싶고.
비겨도 진 경기였다는 게 그때의 느낌. 그걸로도 모자라
5)
치홍이는 그래도 그 비슷한 구속대의 직구를 가장 최근까지 본 녀석.
게다가 외야는 전문 외야수도 아닌 선수도 있었고... (아마 중견이 모창민이었으니까)
그 덕분인지 3루타를 쳤습니다.
그리고 무사 3루에 이호신이 나왔죠.
최정 공이 좋았다지만 그래도 프로까지 온 선수라면 치던가 고르던가 했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이전에 잘해준 선수에게, 야간 경기에 공격이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뭐라고 더 첨언하기는 그렇고.
암튼 투 스트라이크까지 잡힌 상황에서 이성우 대타.
아무리 이성우 타격이 헬 소리 듣는다지만 그래도 전문 투수도 아닌 선수의 공을 골라낼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을 골라 나가고.
김형철이 타석에 들어선 가운데 갑자기 떨떠름한 표정의 이만수 코치가 나오면서 문제의 시프트가 가동된 것이죠.
슥흐 선수들마저 우왕좌왕 이해못하는 표정이라, 처음엔 유격수와 2루수 자리를 바꾸는가보다 생각까지 했는데 갑자기 1루 제외한 내야 세 명이 왼쪽에서 반상회 분위기의 시프트까 짜여집디다. 그리고 1루에 서있는 선수는 전문 야수도 아닌 윤길현.
그 전까진 그래도 웃을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3루쪽 관중들은 이쯤 되니까 뭐야 뭐야 하고 술렁이다가, 야유를 시작한 것이죠.
sbs는 엑스포츠와 달라서 현장음 조절을 할 줄 아는 방송사이니 다시 보기 돌려보면 방송에는 야유 소리가 안 들렸을 수도 있겠는데, 확실히/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야유했습니다.
자, 형철이 너 좌타자지? 저기로 잡아당겨서 치면 되는거야, 안 그래? 라는 이야기로까지 보였다고요.
6)
그전까진 물병 두 개를 만지작거리던 박기남 발치엔 어느 순간 더이상 물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걸로 우리 선수들 분위기에 대해서 설명을 대신합니다.
이벤트로 이해할 수 있다고요?
시프트를 가동하는 당사자까지 우왕좌왕하고, 그리고 당하는 선수들이 어느 순간 팔짱만 끼고 있고, 상당수의 팬들이 야유를 시작한 그 분위기가 이벤트?
7)
그리고 그전부터 문제가 보였던 정상호의 블로킹이 문제가 되면서 원바운드 공에 폭투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치라고 길 내어준 곳에 안 쳐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좋을 수도 없는 상황.
들어오는 3루주자 치홍이가 팔이라도 쳐들고 세리머니라도 하덥니까?
잠시 멈칫하다가 아주 떨떠름한 얼굴로 홈으로 들어오는데,
8)
저는 로페즈를 달리 봤어요.
정말 이기면서도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한없이 밝은 남미계 도미니칸 외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뻘쭘한 상황에 제일 먼저 뛰쳐나가 일부러라도 박수 짝짝짝 쳐주고 하이파이브 크게 해주면서 선수들 토닥토닥토닥. 무슨 얘기 오갔는지 몰라도 잘했어, 브라보! 그런 얘기 연신 주워섬기고 있었겠죠.
그리고 구톰슨도 일부러라도 웃으면서 나오고...
그러니까 덕아웃으로 떨떠름하게 향하던 선수들이 억지로라도 조금씩 웃고.
정말 로페즈가 고마웠습니다.
리그 존중 안 한다고 깠던 게 미안해지고 부끄러워지고...
어린이들 천국인 우리 팀에서 항상 덤덤한 표정으로 뒷줄에 앉아있는 모습만 봤던 노장 선수였죠.
진짜 그런 침울한 상황에서 겨우 1년 단기 계약 외국인 선수가 노장으로서 분위기 반전을 해주려고 일부러라도 오바를 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게 쉽습니까? 그냥 1년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일본 가면 그만일 수도 있는데?
우리 올해 진짜 외국인 선수들 다 잘 뽑았어요.
이 두 선수들 있을때 뭐라도 해야겠다고 우리 선수들 마음 다시 단디 먹어야 한다, 하고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9)
문제의 '이벤트'를 했던 슥흐 선수들 고개를 다 푹 숙이고 나오더군요.
코칭스탭들 표정도 밝지도 않았죠. 특히 제일 먼저 나온 이만수 코치 표정이.
그리고 제가 앉은 자리가 3루쪽 내야석에,
방송 4번 카메라와 불그 카메라가 있던 쪽입니다.
4번 카메라맨과 불그 카메라맨 둘은 서로 안면도 있어서 그런지 서로 이런저런 농담도 나누면서 현장을 담던 사이였지요.
그 사람들 둘은 어느 순간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표정이 되더군요.
그 씁쓸한 미소.
옆에서 제가 이게 야구야!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어디 저런 비웃기는 처자가 다 있나' 했을지는 몰라도 일언 반박도 못하는 표정이요.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이벤트라니 우습지도 않습니다.
현장은 그랬습니다.
진짜 떨리는 손으로 연사해서 다 흔들린 우리 선수들 표정이라도 올려야 하나요?
로페즈가 아무리 오바해도 환하게 웃는 분위기가 안 됐던 그 상황, TV가 그 씁쓸한 분위기 안 잡아주던가요?
* 기자님 블로그 공격 당하는 거 보니 웃음도 안 나와.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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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오후 8시 덧붙임. 역시나 미션 컴플리트. ㄲㄲㄲㄲㄲㄲㄲ
아무리 잉여 타자들이라고 안타 하나 못 치고 끌려가는 꼬라지들 봐라. ㅋㅋㅋㅋㅋㅋ
이런 경기가 이벤트? 장난해? 한 경기 버리고 열 경기 잡는 시나리오였던 거지. ㅋㅋㅋㅋㅋ
